신앙인의 행복(幸福)!
기억(記憶)을 ‘고통의 주머니’라고 합니다.
과거에 좋았던 기억이 떠오르면 이전보다 못한 지금을 보면서 고통스럽고, 과거에 나빴던 일이 떠오르면 그때일이 생각나서 괴롭기 때문입니다. 좋은 기억을 떠올리건, 나쁜 기억을 떠올리건 이래저래 고통스러운 것이니, 그래서 시인은 기억을 ‘고통의 주머니’라고 이름 지었나 봅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크레이토스’와 ‘반츠’라는 효성이 지극한 형제가 있었습니다. 이 형제의 극진한 효성이 너무나 고귀하고 귀감이 되어서 신(神)들은 이들에게 큰 상을 선물하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 신들이 회의를 했습니다. ‘헤라’ 여신의 의견이 채택이 되어 이들에게 내려진 상은 ‘영원히 깨지 않는 잠’이었습니다. ‘영원히 깨지 않는 잠’ 즉, ‘죽음’이 신들이 효성 지극한 형제에게 선물한 가장 큰 상이었던 것입니다. 고통의 주머니를 달고 괴로운 인생을 사는 인간에게는 영원히 깨어나지 않는 잠이 가장 큰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아이러니 한 것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가장 큰 상인 죽음을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인생길의 끝에 행복이 있는 것처럼 미래를 기대하지만,
행복은 인생의 과정(過程), 인생의 여정(旅程)에 있는 것이지 인생의 끝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 길 끝에 가면 이는 빠지고, 소화도 안 되고, 근육은 풀어지고, 가죽은 늘어지고, 허리는 구부러지고, 여기 저기 아픈 데가 많고 그저 무기력하게 죽음을 기다리게 됩니다. 인생길 끝에 그 끝점에서 조차도 ‘행복’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우리 신앙인 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죽고 싶어서 죽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죽음을 ‘모순(矛盾)의 극치(極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늙으면 심장박동이 약해져서 손가락 발가락 끝에까지 피를 보내지 못하니까 끝 마디가 저려오고, 손, 발이 뻐근하고, 근육이 뭉쳐서 풀어지지 않으니까 주무르고 두드립니다. 이러한 힘겨운 상황 속에서 미래는 안보입니다. 가족에게 짐만 되는 것 같아 미안하고 마음엔 고통만 있습니다. 이때쯤 되면 양지 바른 곳에 누워있는 것이나 방 아랫목에 누워있는 것이나 매일반이 됩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양지 바른 무덤에 누워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 로마서 8:20 –
죽음은 누구나 딱 한번만 경험하게 됩니다.
경험하는 순간 모든 것과 단절돼 버립니다. 죽음이 주는 두려움과 공포가 여기에 있습니다. 경험해 본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경험해 본 사람이 없으니 죽음에 대한 적절한 대비를 할 수가 없습니다. 죽음 그 이후의 고독한 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지 아무도 알지를 못합니다.
2,000년 전, 예수님이 ‘부활(復活)’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부활은 이 세상의 어떤 종교에도 그리스 신화에도 없는 유일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부활로 영원히 깨어나지 않는 잠인 죽음을 깨버리셨습니다. 죽음이 주는 고통과 두려움을 제거하셨습니다. 그분이 오신 후로 성경에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무언가 항상 앞에 따라다니던 것, 즉 아브람함의 자손, 야곱의 자손, 다윗의 자손 등 앞에 붙어 다니던 조건들이 그 분이 오신 후로는 없어 졌습니다. ‘심령이 가난 한자는 복이 있나니…’ 이런 식입니다. 실로 주님이 오신 후 모든 게 다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데 물리적인 제한이 없어진 것입니다. 인종도, 혈통도, 지식도, 재물도 부활이라는 신의 축복을 받는데 장애가 될 수 없습니다.
잠을 자다가 깨어보니 하나님 계신 하나님의 방에 있는 것, 이것이야 말로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입니다. 이 방에서는 기억이라고 하는 고통의 주머니가 없어집니다. 모든 아픔과 고통이 치유되는 부활의 방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순의 극치인 죽음을 부활에 이르는 길로 만들었습니다. 온전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주님께서 만드신 이 길을 걸어갑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들, 신앙인들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고 또 하나의 시작입니다.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이 행복입니까? 고통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영원한 잠을 자는 사람은 행복과 기쁨도 느낄 수 없습니다. 행복은 기억이 주는 고통이 변하여 영원한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부활의 능력이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 주님과 함께 부활에 이르는 길을 걸어보시지 않겠습니까?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이사야 65: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