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사랑의교회

7. 교인들이 왜 그렇게 살아요? – 다 아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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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말씀 – 마태복음 9장 11 ~ 13절

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생각해 봅시다

성경은 오늘 주제의 질문에 어떻게 답하는지 살펴봅시다. [마13:24-30]

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29.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밭에 좋은 씨를 뿌리셨지만 사탄이 몰래 가라지를 덧뿌려 곡식과 가라지가 함께 자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싹이 날 때는 가라지와 곡식이 구분되지 않아 놔두었는데, 자라고 보니 가라지가 곡식들 가운데 있는 것을 종들이 발견하게 됩니다. 종들은 좋은 씨를 뿌렸는데 가라지가 자란 것을 의아해하며 가라지를 뽑고자 하지만 주인은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이 상할까 염려된다며 그들을 제지합니다. 여기에서 ‘가라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쭉정이’와 다릅니다. 쭉정이는 안에 열매가 없지만 가라지에는 열매가 맺힙니다. 그러나 가라지의 열매는 독보리이기 때문에 먹으면 복통을 일으킵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해 세상에 가라지처럼 독보리를 맺는 악한 사람들이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동시에 이들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사람이 아닌 사탄의 씨앗임을 말씀하십니다.

교회도 세상 속에 존재합니다. 세상 속에 선한 사람과 독보리와 같은 사람이 공존하듯 교회에도 이 둘이 공존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바리새인과 예수님의 대화가 나옵니다.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에게 “왜 너희 선생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가?”라고 묻습니다.
이들의 물음을 들으신 예수님은 “의사가 건강한 사람이 아닌 병든 자에게 필요하듯 나도 의인이 아닌 죄인을 위해 왔다.”라며 직접 답하십니다. 그렇기에 교회에는 죄인이 넘쳐납니다. 마치 환자가 치유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아오는 것처럼 교회에는 죄 사함을 받고자 하는 죄인들이 넘쳐납니다.

영적인 시선으로 보면 교회는 병원으로, 예수님은 병원장으로, 목사님은 의사로 성도는 환자로 비유될 수 있습니다.
아픈 사람이라면, 치료받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조건 없이 누구나 병원에 들어갈 수 있듯이 교회도 변화되고자 하는 사람,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올 수 있습니다. 교회라는 병원 문 앞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교회에는 치유 받은 사람, 치유되고 있는 사람, 치유되지 않은 사람 등이 한데 모여 있는 곳이기에 늘 시끄럽습니다.
질병이 치유되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돌봐주거나 사랑해줄 수 없습니다. 아파서 울부짖는 사람은 내가 너무 고통스러워 그럴 수 없습니다. 반면 질병이 치유된 사람은 은혜가 넘칩니다. 병든 사람을 돌보고 주변을 섬깁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 주제의 질문에 이렇게 답할 수 있습니다.
“교인들이 왜 그렇게 살아요? 다 아파요?”
“네 그렇습니다. 교회에는 아픈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들은 본인이 아프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치유 받고 변화되길 바라는 사람들입니다.”

마지막으로 성도에 관한 명언으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교회에는 녹슨 교인이 많은데 그것을 닦지 않고 있는 이는 더 많다.

벤스 하브너(부흥운동가, 20세가 가장 많이 인용된 설교자)

그는 녹슨 것을 닦지 않는 이유는 본인이 녹슬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니라 녹슨 것을 닦아내는 과정이 힘들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 부끄러움과 고통을 감내할 때 비로소 깨끗해질 수 있습니다.

교회에는 거듭난 사람들보다는 명목상 신앙 고백한 사람들이 더 많다. 세상의 종말은 반드시 올 것이고 그때 성도들은 다 똑같은 대접을 받는 것이 결코 아니다.

리차드 백스터(영국 청교도지도자, 시인이며 신학자이며 논쟁가)

리차드 백스터는 입술로 신앙하는 많은 사람들이 참된 신앙인을 조롱하는 현상이 교회에서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세상은 그 입술로 신앙하는 사람들을 보며 교회와 성도를 조롱합니다.

우리는 비록 죄는 많아도 성도라고 불린다. 이 사실은 밀밭에서 많은 잡초를 보더라도 우리가 그 밭은 잡초밭이라고 부르지 않고 밀밭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폴 베인(영국 청교도, 유명 에베소서 강해 설교자)

폴 베인은 우리가 완전하지 않고 허물이 많아도 성도라고 불리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총 때문임을 고백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도들을 정확하게 판단할 기준도, 능력도 없다. 그들은 성도들의 허물만 볼 뿐이지 은총은 보지 못한다. 왕자는 왕의 영광을 가슴 속에 깊이 담아 두고 있는 법이다.

존 오웬(잉글랜드의 비국교도 교회지도자, 신학자이며 옥스포드 대학교의 학장)

존 오웬의 말에 의하면 세상 사람들은 밖에서 허물만 볼 뿐이지 안에서 역사되는 하나님의 은총은 보지 못합니다. 안으로 들어왔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음을 말합니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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