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사랑의교회

추수감사절 유례

곡물 추수와 관련되어 성경에 나타난 최초의 감사 제사는 가인과 아벨의 제사(창 4:3,4)이며 유대인의 칠칠절, 수장절 등과 같이 (맥추감사절 참조) 고대로부터 추수 감사에 관련된 의식은 어느 나라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각 나라의 민속적인 풍습으로 행해졌던 추수 감사제가 교회의 한 절기로서 지켜지게 된 것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청교도들에 의해 거행되었던 1621년의 추수 감사절의 영향 때문이다.

성경 말씀대로 경건하게 생활하려는 청교도들과 이미 형식주의적 신앙생활에 젖은 영국의 국교도들 간에는 많은 신앙의 갈등이 있었다.

그런데 영국의 국왕은 영국의 국교도와는 다른 신앙 견해를 가진 청교도들을 용납하지 않았으며, 신앙적 자유를 허락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청교도들은 그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네덜란드로 건너갔다.

그러나 11년간의 네덜란드에서의 생활은 무척 고된 것이었으며, 올바른 신앙인으로 자녀를 교육하기란 더더욱 힘이 들었다.
이에 청교도들은 신대륙으로 가기 위해 7년 동안 힘들여 일해서 번 돈으로 배를 샀다.

그러나 스피드웰 이란 이름을 가진 그 배는 장기간 항해에 적합하지 않았으므로 다시 다른 배를 구입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메이 플라워이다.
그러나 이 배 역시 180톤의 작은 배에 지나지 않았다.

청교도들이 신대륙에 도착한 때는 겨울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심한 식량난과 추위, 기후차와 영양 실조들의 원인으로 인해 첫 겨울에 102명 가운데 44명이나 죽었으며 그 나머지도 질병에 시달렸으므로 항상 일손 부족으로 인한 격무에 시달려야 했다.

그때 심한 고통 속에 있던 그들에게 도움을 주었던 것은 마음 좋은 인디언들이었다.

이 대륙의 원주민인 인디언들은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는 청교도들에게 옥수수 등의 곡물을 가져다 주었고, 농사짓는 방법도 가르쳐 주었다. 이들의 도움으로 다음 해인 1621년 청교도들은 풍성한 곡식을 추수할 수 있었다.

이에 청교도들은 친절한 인디언들을 초대해 추수한 곡식과 칠면조 고기 등을 함께 먹으며 신대륙에서의 기쁜 첫 추수 감사절을 가졌다.

“우리는 대서양을 건너와 여러 친구들을 잃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대했던 것보다 많은 것을 주셨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첫 열매를 그 분께 드린다“

관리자

관리자

Your Header Sidebar area is currently empty. Hurry up and add some widgets.